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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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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은 《은하영웅전설》에 등장하는 가상의 인물로, 은하제국을 통일하고 로엔그람 왕조를 건국한 초대 황제이다. 그는 어린 시절 누나를 황제에게 빼앗긴 후 골덴바움 왕조를 증오하며 군인의 길을 선택, 뛰어난 군사적 재능으로 급속도로 성장했다. 그는 20세에 상급대장이 되었고, 이후 제국 원수, 우주함대 사령관을 거쳐 립슈타트 전쟁에서 문벌 귀족을 타도했다. 그는 페잔 자치령 병합과 자유행성동맹 제압 후 황제가 되었으나, 25세의 젊은 나이에 병으로 사망했다. 라인하르트는 군사적 능력과 정치적 수완을 겸비했지만, 내면 성찰의 부족과 지나친 권위주의, 여성관에 대한 비판도 존재한다.

2. 약력

우주력 776년(제국력 467년) 3월 14일 은하제국의 수도별 오딘에서 하급 귀족 세바스티안 폰 뮈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릴 적에 사고로 어머니(클라리벨 폰 뮈젤)를 여의고, 5살 연상인 누나 안네로제 폰 뮈젤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다. 부친이 재산을 탕진하고 변두리로 이주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유일무이한 친구이자, 후에 동지가 되는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와 만나, 소년 시절을 보낸다.

10살 때, 안네로제가 궁내성 공무원의 눈에 띄었고, 황제 프리드리히 4세의 후궁으로 간택되어 궁에 들어간다. 라인하르트는 누나를 빼앗아간 골덴바움 왕조와 황제를 격렬하게 증오하면서 문벌 귀족의 전횡과 제국의 현체제에 의문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누나를 되찾기 위해 골덴바움 왕조를 쓰러뜨리고 제국의 현 체제를 바꾸겠다는 결심을 한다. 이 결의를 알게 된 키르히아이스도 거기에 뜻을 같이 하게 된다. 가장 빨리 권력을 잡기 위한 방법으로 군인이 되는 길을 선택하고, 그 둘은 제국군 유년 학교에 입학한다. 유년 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통상적으로는 준위에 임관하지만, 라인하르트는 특별 대우를 받아 소위 계급부터 군 경력을 시작한다.

첫 임무는 그가 바라고 있던 우주 함대 근무가 아니라, 행성 카프체란카에서의 지상전 임무였다. 그 후 중위 계급으로 구축함 하메룬 II의 항해장을 맡았고, 대위 계급으로 오딘의 군무성에서 근무하였다. 제5차 이제르론 공방전에서는 소좌(소령) 계급으로 구축함의 함장을 맡았고, 중령 계급으로 순항함 헤이슈리히 엔첸의 함장을 맡다가, 대령으로 헌병대에 근무하였다. 준장으로 반플리트 회전에 참가하여, 제3차 티아매트 회전에서는 중장으로, 제4차 티아매트 회전에서는 대장으로서 싸웠다. 참가한 싸움에서는 천부적인 재능을 발휘하여 수많은 군사적 공적을 쌓으며, 20세의 나이로 상급대장이 되었고, 단절되었던 로엔그람 백작가의 가명을 하사받는 이례적 출세를 하였다. 또한, 그 과정에서, 나중에 그의 신하가 되는 우수한 인재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누나가 황제의 총애를 받기 때문에 그러한 출세를 하게 되었다는 시기를 받으며, 문벌 귀족이나 군 상층부로부터 '치마 속의 대장'이라는 야유를 받기도 한다.

주산나 폰 베네뮌데 후작 부인이나 플레겔 남작 등의 반대세력에게 표적이 되어 몇 번이나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지기도 하지만, 키르히아이스 등의 활약으로 목숨을 지킬 수 있었다.

아스타테 회전에서의 공적으로 제국 원수, 우주함대 부사령장관에 임명되고, 암릿처 회전에서의 공적으로 우주함대 사령장관에 임명되며 후작 작위를 하사받으며 착실하게 군의 실권을 장악해 나간다. 립슈타트 전쟁에서는 제국군 3장관을 겸하는 제국군 최고사령관이 되어 문벌 귀족 세력을 타도한다. 문벌 귀족과의 전투 중, 그의 과실로 인해 오랜 친구였던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를 잃는다. 한때는 망연자실한 상태가 되지만 회복한 후, 은하를 손에 넣겠다는 다짐을 한다. 이후 제국 재상 리히텐라데 공작을 제거하고 스스로 제국 재상을 겸임하여, 어린 황제를 대신하여 사실상의 지배자가 된다.

그 후 라그나로크 작전을 실행해 페잔 자치령을 병합하고 자유행성동맹을 제압하고 수도 오딘에서 우주력 799년(제국력 490년, 신제국력 1년), 골덴바움 왕조부터 황제 자리를 선양(사실상 찬탈에 가깝다.)를 받아 23세의 나이로 로엔그람 왕조를 세우고 초대 황제 라인하르트 1세로 즉위한다.

자유행성동맹 수도 하이네센에 헬무트 렌넨캄프를 고등판무관으로 파견하지만, 그는 양 웬리의 책략에 빠져 수치심으로 자살하고, 이를 명분으로 동맹을 재침공(2차 라그나로크 작전)해 완전히 병합해버린다.

동맹을 병합했지만 양 웬리 함대는 엘 파실 성계로 도주해 엘 파실 혁명정부군이 되고, 그들이 이제르론 요새를 점령하자 라인하르트가 이끄는 제국군은 이제르론 회랑에서 양 웬리 함대와 회전을 벌인다. 하지만 승부는 라인하르트의 병으로 인해 제국군이 철수해 무승부가 되고, 양 웬리는 회전뒤 황제와 회담을 하러 이동하던 중 지구교에 의해 암살을 당한다. 그 후 엘 파실 혁명정부는 해산되었지만 남은 양 웬리 함대는 이제르론 요새에서 이제르론 공화정부를 결성해 제국에 저항한다.

제국군과 공화정부군은 시바 성역 회전에서 회전을 벌이는데, 이때 공화정부군의 사령관이었던 율리안 민츠가 라인하르트와 회담을 해 전투는 종료된다. 그 후 바라트 성계를 이제르론 공화정부에 넘겨주는 대신 이제르론 요새를 돌려받아 전 은하의 통일을 이룬다. 라인하르트 1세는 전 은하를 통일했지만 자신의 병으로 사망한다.

그 후의 동란에서도 진두지휘를 계속했지만, 그 진중에서 "변이성 극증 교원병"이라는 기병에 걸린 것이 판명된다. 신종 병인 이 병에는 치료법이 없었고, 병명조차 가명으로밖에 불리지 않았으며, 라인하르트 외에는 감염 사례가 없는 이 병은 후에 "황제병"으로 불리게 된다.

신제국력 3년 (우주력 801년) 7월 26일, 25세로 붕어. 재위는 만 2년 남짓이었다.

2. 1. 출생과 성장

우주력 776년(제국력 467년) 3월 14일 은하제국의 수도별 오딘에서 하급 귀족 세바스티안 폰 뮈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릴 적에 사고로 어머니 클라리벨 폰 뮈젤을 여의고, 5살 연상인 누나 안네로제 폰 뮈젤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다. 부친이 재산을 탕진하고 변두리로 이주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유일무이한 친구이자, 후에 동지가 되는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와 만나, 소년 시절을 보낸다.

10살 때, 안네로제가 궁내성 공무원의 눈에 띄었고, 황제 프리드리히 4세의 후궁으로 간택되어 궁에 들어간다. 라인하르트는 누나를 빼앗아간 골덴바움 왕조와 황제를 격렬하게 증오하면서 문벌 귀족의 전횡과 제국의 현체제에 의문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누나를 되찾기 위해 골덴바움 왕조를 쓰러뜨리고 제국의 현 체제를 바꾸겠다는 결심을 한다. 이 결의를 알게 된 키르히아이스도 거기에 뜻을 같이 하게 된다. 가장 빨리 권력을 잡기 위한 방법으로 군인이 되는 길을 선택하고, 그 둘은 제국군 유년 학교에 입학한다. 유년 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통상적으로는 준위에 임관하지만, 라인하르트는 특별 대우를 받아 소위 계급부터 군 경력을 시작한다.

2. 2. 군 경력과 출세

라인하르트 폰 뮈젤은 우주력 776년(제국력 467년) 3월 14일 은하제국의 수도별 오딘에서 하급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사고로 어머니를 여의고 누나 안네로제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다. 10살 때 안네로제가 황제 프리드리히 4세의 후궁으로 간택되자, 골덴바움 왕조와 황제를 증오하며 누나를 되찾기 위해 군인이 되기로 결심한다.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도 이 결심에 동참하였고, 둘은 제국군 유년 학교에 입학하여 졸업 후 라인하르트는 특별 대우로 소위부터 군 경력을 시작한다.

첫 임무는 행성 카프체란카에서의 지상전이었고, 이후 구축함 하메룬 II의 항해장(중위), 오딘 군무성 근무(대위), 제5차 이제르론 공방전에서 구축함 함장(소령), 순항함 헤이슈리히 엔첸의 함장(중령), 헌병대 근무(대령) 등 다양한 보직을 거쳤다. 반플리트 회전(준장), 제3차 티아매트 회전(중장), 제4차 티아매트 회전(대장) 등 주요 전투에서 뛰어난 군사적 재능을 발휘하여 20세에 상급대장이 되고 로엔그람 백작가의 가명을 하사받는 이례적인 출세를 이룬다.

이 과정에서 훗날 그의 신하가 되는 우수한 인재들을 만나게 되었지만, 누나의 후광 덕분에 출세했다는 시기를 받으며 '치마 속의 대장'이라는 야유를 받기도 했다. 주산나 폰 베네뮌데 후작 부인, 플레겔 남작 등 반대 세력의 표적이 되어 여러 차례 위기에 처했지만, 키르히아이스 등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졌다.

아스타테 회전에서의 공적으로 제국 원수 및 우주함대 부사령장관에 임명되었고, 암릿처 회전에서의 공적으로 우주함대 사령관 및 후작 작위를 받으며 군의 실권을 장악해 나갔다. 립슈타트 전쟁에서는 제국군 최고사령관이 되어 문벌 귀족 세력을 타도하고, 이후 제국 재상 리히텐라데 공작을 제거하고 스스로 제국 재상을 겸임하여 사실상의 지배자가 된다.

2. 3. 권력 장악과 은하 통일

라인하르트는 아스타테 회전에서의 공적으로 제국 원수 및 우주함대 부사령장관에 임명되었고, 암릿처 회전에서의 공적을 인정받아 우주함대 사령장관으로 승진하며 후작 작위를 받았다. 이후 립슈타트 전쟁에서 제국군 최고사령관이 되어 문벌 귀족 세력을 타도하였으나, 이 과정에서 오랜 친구였던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를 잃는 아픔을 겪었다.

정신을 추스린 라인하르트는 은하 통일의 야망을 다지며, 제국 재상 리히텐라데 공작을 제거하고 스스로 제국 재상을 겸임하여 어린 황제를 대신하는 사실상의 지배자가 되었다. 이후 라그나로크 작전을 실행하여 페잔 자치령을 병합하고 자유행성동맹을 제압했다.

우주력 799년(제국력 490년, 신제국력 1년), 라인하르트는 골덴바움 왕조로부터 황제 자리를 선양받아(사실상 찬탈) 23세의 나이로 로엔그람 왕조를 세우고 초대 황제 라인하르트 1세로 즉위했다.

자유행성동맹 수도 하이네센에 헬무트 렌넨캄프를 고등판무관으로 파견했지만, 양 웬리의 책략에 빠진 렌넨캄프가 자살하자, 라인하르트는 이를 명분으로 동맹을 재침공하여 완전히 병합했다.

양 웬리 함대가 엘 파실 성계로 도주하여 엘 파실 혁명정부군이 되고, 이제르론 요새를 점령하자, 라인하르트는 직접 제국군을 이끌고 이제르론 회랑에서 양 웬리 함대와 회전을 벌였다. 그러나 라인하르트의 병으로 인해 제국군이 철수하면서 전투는 무승부로 끝났고, 양 웬리는 회담을 위해 이동하던 중 지구교에 의해 암살당했다. 이후 엘 파실 혁명정부는 해산되었지만, 남은 양 웬리 함대는 이제르론 요새에서 이제르론 공화정부를 결성하여 제국에 저항했다.

시바 성역 회전에서 율리안 민츠가 이끄는 공화정부군과의 회담을 통해, 라인하르트는 바라트 성계를 넘겨주는 대신 이제르론 요새를 돌려받아 전 은하의 통일을 이루었다. 그러나 라인하르트 1세는 자신의 병으로 인해 통일 직후 사망했다.

3. 가족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은 어린 시절 사고로 어머니 클라리벨을 잃고, 아버지 세바스티안과 누나 안네로제가 있었다. 어린 시절 죽은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희미했다. 어머니를 대신해 자신을 돌봐준 누나가 후궁으로 간택되었을 때, 하사금을 받은 아버지를 "누나를 돈으로 팔았다"며 평생 용서하지 않았다.[24] 반면, 옆집에 살던 키르히아이스와의 교류는 깊어, 라인하르트와 안네로제는 종종 키르히아이스를 라인하르트의 형제처럼 대했다. 따라서 라인하르트의 의식 속에서 부모는 가족으로 인식되지 않았고, 절친한 친구였던 키르히아이스를 가족의 일원으로 인식했다. 또한, 그의 성장 배경 때문에 본인은 자각하지 못했지만 상당한 수준의 시스터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다.[25]

이후 아내 (힐데)를 얻어 장남 알렉산데르 지크프리트를 낳았지만, 아내 힐데와는 진정으로 가족이 될 시간이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취미가 없고 정치와 군사만이 전부였던 라인하르트가 힐데에게 정치나 군사에 대한 상담을 하는 것은 서툰 라인하르트 나름의 아내에 대한 어리광이었을지도 모른다. 율리안에게 라인하르트는 "황후는 나보다 훨씬 정치적 식견이 풍부하다"고 말하는데, 이는 라인하르트에게 최대의 자랑이 아니었을까 하고 율리안은 회고한다. 한편, 힐데 역시 비서였던 당시에도 라인하르트를 배려하며 비서의 범위를 넘어선 조언을 라인하르트에게 했다. 타인에게는 가족으로서의 애정, 남녀로서의 연애 관계가 있었는지 의심받는 입장이지만, 사생활에서는 서툰 두 사람에게 이것이 최선을 다한 애정 표현, 연애의 형태였을지도 모른다. 또한, 라인하르트는 힐데 앞에서 흥분하거나 감정을 격발시키는 등, 무의식중에 힐데에게 어리광을 부리는 모습이 종종 보인다. 힐데와의 사이에서는 결혼 초 서로를 이름으로 부르자고 제안하여 그렇게 불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폐하", "황후"라는 호칭으로 정착했다.

4. 성격 및 능력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은 군인으로서 "전쟁의 천재", "불패의 영웅"으로 불리며 제국군 장병들의 경외와 충성을 받았다.[1] 그러나 양 웬리에게는 유일하게 승리하지 못했다.[1] 그는 직접 진두지휘하여 승리하는 것을 고집했으며, 전략적으로 유리한 방법이 있음에도 정면 대결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었다.[1] 이 때문에 뛰어난 전략 안목을 가졌음에도 전술가적인 면모가 강했고, 양 웬리에게 이 점을 간파당해 위기에 빠지기도 했다.[1] 하지만 최전선에 서는 것은 부하들을 격려하고 충성을 이끌어내는 효과가 있었다.[2]

골덴바움 왕조 시대, 라인하르트의 빠른 승진은 누나 안네로제가 황제의 총비가 된 영향이 컸다.[3] 상관들은 라인하르트를 위험하고 성가신 존재로 여겨, 공을 세우면 영전을 시켜 멀리 보내려 했다.[3] 라인하르트는 동료나 부하로서 사귀기 어려운 성격이었고, "달리는 트러블"이라고 불릴 정도로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3] 이러한 배경 때문에 문벌 귀족만큼이나 현 체제에서 출세하려는 이들에게 증오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로이엔탈이나 미터마이어 등은 그의 능력을 알아보았다.[4]

라인하르트는 정략과 모략의 유효성을 알고, 때로는 비정한 결단을 내리는 냉철함을 갖추고 있었다.[5] 민중을 희생시키면서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고, 이로 인해 암살 미수 사건까지 발생했다.[5]

정치가로서도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여 골덴바움 왕조의 악습을 개혁하고 공정한 제도와 재판을 중시하여 제국 인민의 지지를 얻었다.[6] 농민 금고 신설, 언론 자유 보장 (불경죄 제외) 등 개혁을 추진했고, 개명파 귀족과 실력파 기술 관료를 등용했다.[6] 이러한 정책으로 민중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었으며, 양 웬리는 그를 이상적인 전제 군주로 평가했다.[6]

후대 역사가들은 라인하르트가 없었다면 은하 제국이 분열되고 혼란에 빠졌을 것이라고 평가한다.

결점은 내면 성찰이 부족하고 학구적인 사고가 부족하다는 점이다.[7] 천재였기 때문에 범인의 심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적을 만들기도 했다. 민주 정치의 결점을 지적하면서도, 민중이 루돌프 폰 골덴바움이나 요브 트리니히트에게 권력을 준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고, 민주주의를 지지하지 않았다.

용모는 금발과 창빙색 눈동자를 가진 미청년으로 묘사되지만, 본인은 외모를 자랑하지 않았다. 어린애 같은 면이 있어 키르히아이스의 키가 더 커지자 질투하기도 했다. 싫어하는 음식은 상추다.

"싸움을 즐긴다"는 평가처럼 호전적이고 격정적인 성격으로, 누이에 대한 중상모략에 격분하기도 했다.[12] 어린 시절부터 적을 만드는 경향이 있었고, 미터마이어는 라인하르트가 죽으면 발할라에서 먼저 죽은 제독들을 모아 정복에 나설 것이라고 상상하기도 했다.

타인의 밑에 있는 것을 싫어하여 학교에서 싸움에 자주 휘말렸고, 오만한 성격 때문에 미움을 받기도 했다. 입대 후에도 "달리는 트러블"로 불리며 평판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하급생들에게는 칭송받았고, 아랫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카리스마를 발휘했다.

골덴바움 왕조의 불공정함을 증오했지만, 예절과 관습은 존중했다. 즉위 후에는 말투가 부드러워지고 정중한 말을 사용했으며, 부하들에게도 예절을 지켰다. 독재 체제 확립 후에도 제국 재상으로서 직무에 정려했다.

안전한 곳에서 지휘하는 것을 혐오하여 항상 최전선에 섰다.[13] 황제 즉위 후에도 스스로를 최전선에 세웠고, 로이엔탈의 반란에서도 직접 싸우고 싶어 했다. 그러나 부하의 무훈을 가로채지 않도록 의식했다.

인재 수집에 뛰어나 귀천, 나이, 소속을 불문하고 유능한 인재를 등용했다.[14] 립슈타트 전역에서 적대했던 파렌하이트와 슈트라이트, 바미리온 성역 회전 후의 을 초빙하려 한 것이 그 예이다.

자신의 재능을 과신하거나 행동 원리에 반하는 자에게는 용서가 없었다.[14] 무능하면서 가문을 이유로 대우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문벌 귀족에게는 특히 가혹했다.

베스터란트의 학살 묵인, 키르히아이스의 죽음, 안네로제의 멀어짐은 트라우마가 되어 그의 생애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암살 미수 사건 때, 남자의 비난에 동요하여 풀어주려 하기도 했다.

가난한 귀족 가정 출신으로 검소함을 좋아하고, 황실의 식전이나 귀족들의 환대를 싫어했다. 즉위 후에도 군복만을 애용하고, 많은 수행을 싫어했다. "무취미하고 일 중독 기질"이라는 평가를 받으며,[15] 안네로제는 "1광년 이하의 일에는 관심이 없다"라고 평가했다.

여성 관계에 어둡고 경험이 부족하며, 성적 욕구가 희박했다.[16][17] 이는 누이 안네로제가 후궁에 들어간 소년기의 상실 체험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힐데에게 청혼할 때는 당황하며 장미 꽃다발을 준비했고, 아들 알렉 대공의 이름을 생각할 때는 종이를 흩뜨려 놓기도 했다.

율리안 민츠에게 "유머 감각은 그럭저럭 없다"라고 평가받았고, 농담을 해도 주변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지 못했다. 키르히아이스는 "남을 깎아내릴 때조차 표현이 화려해서 음습한 인상이 없는 것이 미덕"이라고 평가했다.

숭배자들에게는 "금발의 유익한 사자(그리핀)", 옥좌의 혁명가", 적대자들에게는 "건방진 금발 꼬마[18][19]", "치마 속의 대장[20]" 등으로 불렸다. 양 함대를 포함한 동맹에서는 "하얀 함대의 사령관[21]", "로엔그람 백(후/공)", "황제(카이저) 라인하르트" 등으로 불렸다. 후세 역사가들에게는 "사자 황제 라인하르트" 등으로 불린다.

양 웬리와의 공통점은 검소함과 뻔뻔한 자에 대한 관대함이다. 유머 감각이 부족한 점도 공통점이다. 다른 점은 라인하르트는 근면하고 역사를 움직이기를 원했지만, 양 웬리는 게으름을 좋아하고 방관자가 되기를 원했다는 점이다.

"은하의 체스 게임" 서장의 등장인물이기도 하며, 그 인품은 구작과 변함없다.[22]

4. 1. 군사적 재능

군인으로서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은 "전쟁의 천재", "불패의 영웅"으로 불리며 제국군 장병들의 경외심과 충성을 한 몸에 받았다.[1] 그러나 양 웬리에게는 유일하게 승리하지 못했다.[1] 그는 직접 진두지휘하여 승리하는 것을 고집했고, 전략적으로 유리한 방법이 있음에도 정면 대결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어, 뛰어난 전략 안목에도 불구하고 전술가적인 면모를 보였다.[1] 이러한 점은 양 웬리에게 이용당해 위기에 빠지기도 했지만, 라인하르트가 직접 진두에 섬으로써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아 충성을 맹세하게 했다.[2]

골덴바움 왕조 시대에 라인하르트의 이례적인 승진은 누나 안네로제가 황제의 총비가 된 영향이 컸다.[3] 상관들은 그의 신변에 위협이 가해지면 자신들의 입장도 위태로워지기 때문에, 라인하르트가 공을 세울 때마다 영전을 추진하여 성가신 존재를 제거하려 했다.[3] 동료나 부하로서도 다루기 힘든 성격이었고, "달리는 트러블"이라고 혹평받을 정도였기에, 이러한 특수한 입장은 문벌 귀족과 동등 이상으로 증오를 받기도 했다.[3] 물론, 로이엔탈이나 미터마이어 등 이후 부하들은 그의 능력을 간파했다.[4]

라인하르트는 당당한 승부를 선호하지만, 오베르슈타인의 등용에서 볼 수 있듯 정략과 모략의 유효성도 잘 알고 있어, 필요에 따라 비정한 결단을 내리는 냉철함도 갖추고 있었다.[5] 때로는 지켜야 할 민중조차도 전략이나 정략을 위해 이용하고 희생시키기도 했다.[5]

정치가로서도 뛰어난 재능과 역량을 보여 골덴바움 왕조의 좋지 않은 제도를 일신하고 공정한 세제와 재판을 중요하게 여겨 제국 인민의 지지를 얻었다. 농민 금고의 신설과 언론의 자유(불경죄 제외) 보장 등 개혁을 추진하여 민중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었고, 양 웬리도 그를 이상적인 전제 군주로 평가했다.[6]

은하영웅전설 본편 시대에 라인하르트가 없었다면, 골덴바움 왕조 은하 제국은 분열되어 수습할 수 없는 혼란에 돌입했을 것이라는 것이 후대 역사가들의 합의이다.

하지만 그는 내면 성찰이 부족하고 학구적인 사고가 거의 없었으며, 천재였기에 범인의 심리를 이해하거나 배려하지 못해 적을 늘리는 측면이 있었다.[7] 또한 민주 정치의 결점을 지적하면서도, 민중이 루돌프 폰 골덴바움이나 요브 트리니히트에게 권력을 준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고, 이는 그가 민주주의를 지지하지 않은 주된 요인으로 보인다.

4. 2. 정치적 역량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은 군인으로서 "전쟁의 천재", "불패의 영웅"으로 불리며 제국군 장병들의 경외와 충성을 받았다.[1] 그러나 양 웬리에게는 유일하게 승리하지 못했다. 그는 직접 진두지휘하여 승리하는 것을 고집했고,[1] 전략적으로 유리한 방법이 있음에도 정면 대결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 때문에 그는 뛰어난 전략 안목을 가졌음에도 전술가적인 면모를 보였으며, 양 웬리에게 이 점을 이용당해 위기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직접 진두에 서는 것은 부하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입장에서의 사명감 때문이었고,[2] 병사들의 사기를 높여 충성을 맹세하게 하는 효과도 있었다.[2]

골덴바움 왕조 시대에 라인하르트의 빠른 승진은 누나 안네로제가 황제의 총비가 된 영향이 컸다.[3] 그러나 황제가 직접 승진을 지시하거나 안네로제가 요청한 적은 없다.[3] 황제의 총비의 남동생인 라인하르트는 상관들에게 성가신 존재였고, 공을 세울 때마다 영전을 추진하여 그를 제거하려 했다.[3] 라인하르트는 동료나 부하로서 사귀기 어려운 성격이었고, "달리는 트러블"이라고 혹평받을 정도였다.[3] 이러한 특수한 입장 때문에 문벌 귀족과 동등 이상으로 증오를 받기도 했다. 물론, 그는 그 지위에 걸맞은 무훈을 계속 세웠고, 로이엔탈이나 미터마이어 등은 처음 그의 모습을 봤을 때 그것을 간파했다.[4]

라인하르트는 오베르슈타인을 등용하는 등 정략과 모략의 유효성을 잘 알고 있었고, 필요에 따라 비정한 결단을 내리는 냉철함도 갖추고 있었다.[5] 때로는 민중을 전략, 정략을 위해 이용하고 희생시키기도 했으며,[5]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어쩔 수 없이 단념해야 했다.

정치가로서 라인하르트는 골덴바움 왕조의 좋지 않은 제도를 일신하고 공정한 세제와 재판을 중요하게 여겨 제국 인민의 지지를 얻었다.[6] 립슈타트 전역 이후 사법/행정 개혁, 농민 금고 신설, 언론의 자유(불경죄 제외) 보장을 실행했다.[6] 또한 귀족 중 개명파인 브라케나 리히터, 실력파 기술 관료인 실버베르히 등을 등용하여 개혁을 추진했다.[6] 이러한 정책으로 라인하르트는 민중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었고, 양 웬리도 그를 이상적인 전제 군주로 평가했다.[6]

만약 라인하르트가 없었다면 골덴바움 왕조 은하 제국은 분열되어 수습할 수 없는 동란에 돌입했을 것이고, 재통일은 요원했을 것이라는 것이 후대 역사가들의 합의이다.

그러나 라인하르트는 내면 성찰이 부족하고 학구적인 사고가 거의 없으며,[7] 범인의 심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배려할 수 없어 적을 늘리는 경향이 있었다. 민주 정치의 결점을 지적하는 분석 능력은 있었지만, 민중이 왜 루돌프 폰 골덴바움이나 요브 트리니히트에게 권력을 주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민주주의를 지지하지 않고 시종일관 비판적이었는데, 이것이 주된 요인으로 보인다.

4. 3. 결점

군인으로서 라인하르트는 "전쟁의 천재", "불패의 영웅"으로 불리며 제국군 장병들의 경외와 충성을 받았다.[1] 그러나 양 웬리에게는 유일하게 승리하지 못했다. 그는 직접 지휘하여 승리하는 것을 고집했고, 전략적으로 유리한 방법이 있음에도 정면 대결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었다.[1] 이 때문에 전략적 안목은 탁월했지만, 용병가로서는 전술가에 가까웠고, 양 웬리는 이 점을 이용하여 그를 위기에 빠뜨리기도 했다. 하지만 라인하르트가 직접 전투에 나서는 것은 부하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입장에서의 사명감 때문이었으며, 이는 병사들의 사기를 높여 충성을 맹세하게 했다.[2]

골덴바움 왕조 시대에 라인하르트의 이례적인 승진 속도는 누나 안네로제가 황제의 총비가 된 영향이 컸다.[3] 하지만 황제가 직접 승진을 지시하거나 안네로제가 요청한 적은 없다.[3] 황제의 총비의 남동생인 라인하르트는 상관들에게 성가신 존재였고, 공을 세울 때마다 영전을 추진하여 제거하려 했다.[3] 동료나 부하로서도 다루기 힘든 성격이었고, "달리는 트러블"이라고 혹평받을 정도였다. 이러한 특수한 입장 때문에 문벌 귀족과 동등 이상으로 증오를 받기도 했다. 물론, 로이엔탈이나 미터마이어 등은 그의 능력을 간파했다.[4]

라인하르트는 당당한 승부를 좋아하지만, 오베르슈타인을 등용하고 정략과 모략의 유효성도 잘 알고 있었으며, 비정한 결단을 내리는 냉철함도 갖추고 있었다. 때로는 민중을 전략, 정략을 위해 이용하고 희생시키기도 했으며,[5], 훗날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단념해야 했다.

정치가로서도 재능과 역량이 뛰어나 골덴바움 왕조의 악습을 없애고 공정한 제도와 재판을 중요시하여 제국 인민의 지지를 얻었다. 립슈타트 전역 직후 사법/행정 개혁, 농민 금고 신설, 언론의 자유(불경죄 제외) 보장 등을 실행했고, 개명파 귀족과 실력파 기술 관료를 등용하여 개혁을 추진했다.[6] 이러한 정책으로 민중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었고, 양 웬리도 그를 가장 이상적인 전제 군주로 평가했다.[6]

은하영웅전설 본편 시대에 라인하르트가 없었다면 골덴바움 왕조 은하 제국은 분열되어 수습할 수 없는 혼란에 빠졌을 것이라는 것이 후대 역사가들의 합의이다.

그러나 라인하르트는 행동적이고 외향적인 성격으로 인해 자기 내면을 성찰하는 일이 적었고, 양 웬리와 같은 학구적인 사고가 부족했다.[7] 또한 천재였기 때문에 범인의 심리를 이해하고 배려할 수 없었고, 스스로 적을 만드는 경향이 있었다. 민주 정치의 결점을 분석하는 능력은 있었지만, 민중이 루돌프 폰 골덴바움이나 요브 트뤼니히트에게 권력을 준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가 민주주의를 지지하지 않고 비판적이었던 것은 이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4. 4. 인사 및 실패

인사 등용 면에서는 훌륭한 인물을 등용하여 적재적소에 배치함으로써, 구습이 심했던 골덴바움 왕조를 극히 기능적인 조직으로 쇄신했다. 하지만 인사상의 실패와는 무관하지 않았다.

구체제 하에서 기득권을 얻고 있던 샤프트을 등용하는 것과 같은 실패도 있었다. 이는 청렴결백함에 스스로 열등감을 느껴, 군주로서 청탁을 아울러 품는 도량을 가지려 노력한 결과의 실패라고 여겨진다[8]。렌넨캄프에게 중책을 맡겨, 후에 그것이 큰 재앙을 초래하는 등 인재 등용의 실패가 치명적인 사태로 이어진 예도 있다[9]。이에 대해, 작중에서 에르네스트 메클링거가 "망원경이 현미경을 겸하지 못했다고 비난해서는 안 된다(모든 면에서 만능은 있을 수 없다)"라는 취지의 옹호 발언을 하고 있다.

또한, 궁지에 몰린 상황이었다고는 하나 대규모 반란을 꾀하게 된[10] 오스카 폰 로이엔탈에게 광대한 구 동맹령과 대규모 우주 함대를 맡긴 인사는 라인하르트 자신도 잘못이었다고 발언했다.

욥 트리히니트를 로이엔탈의 고등 참사관으로 임명한 것은, 그의 미학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예기치 못한 실패였다. 아마도 이런 인사를 트리히니트는 거절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그것을 이유로 두 번 다시 등용하지 않으려고 의도했지만, 라인하르트의 예상과 달리 트리히니트는 순순히 받아들였다[11]。다만 결과적으로 로이엔탈이 트리히니트를 살해할 기회를 만들게 되었고, 이 라인하르트의 실패는 나쁜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스스로 진두지휘하여 승리를 쟁취하는 것에 대한 집착도, 상황에 따라서는 결점이 되었다. 바밀리온 성역 회전이 그 한 예로, 얀 웬리와 대등한 입장에서 싸우는 것에 집착한 것이 한 원인이 되어, 패사할 수도 있는 사태로 몰리게 되었다. 전략적으로는 부하의 반전·포위를 기다리는 지구전 방침을 세웠지만, 자신 스스로가 기다리는 것을 참지 못하고, 얀의 계략에 빠지는 결과가 되었다.

그 호전적이고 외향적인 성격 때문에 테러리즘에 대한 방어 의식이 얇다는 의외의 결점이 있어, 위에서 언급했듯이 암살자의 마수에 노려지는 기회가 많았음에도 자신에 대한 보신을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 경호나 보안이 소홀해지는 장면이 많았으며, 궁지에 몰릴 뿐만 아니라 관계자를 위험에 빠뜨리거나, 죽음을 초래하는 최악의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그런 의미도 있어서 신하들은 보안을 튼튼하게 하기 위해 신궁전 건설을 서둘렀지만 본인은 전혀 무관심하여 호텔 생활을 계속하려 하거나, 가황궁으로 옮겨서도 최소한의 경비에 억제한 결과, 자신의 가족을 위험에 빠뜨리는 실패를 범했다.

4. 5. 성격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은 군인으로서 "전쟁의 천재", "불패의 영웅"으로 불리며 제국군 장병들의 경외와 충성을 받았다.[1] 그러나 양 웬리에게는 유일하게 승리하지 못했다.[1] 그는 직접 진두지휘하여 승리하는 것을 고집했으며, 전략적으로 유리한 방법이 있음에도 정면 대결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었다.[1] 이 때문에 뛰어난 전략 안목을 가졌음에도 전술가적인 면모가 강했고, 양 웬리에게 이 점을 간파당해 위기에 빠지기도 했다.[1] 하지만 최전선에 서는 것은 부하들을 격려하고 충성을 이끌어내는 효과가 있었다.[2]

골덴바움 왕조 시대, 라인하르트의 빠른 승진은 누나 안네로제가 황제의 총비가 된 영향이 컸다.[3] 상관들은 라인하르트를 위험하고 성가신 존재로 여겨, 공을 세우면 영전을 시켜 멀리 보내려 했다.[3] 라인하르트는 동료나 부하로서 사귀기 어려운 성격이었고, "달리는 트러블"이라고 불릴 정도로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3] 이러한 배경 때문에 문벌 귀족만큼이나 현 체제에서 출세하려는 이들에게 증오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로이엔탈이나 미터마이어 등은 그의 능력을 알아보았다.[4]

라인하르트는 정략과 모략의 유효성을 알고, 때로는 비정한 결단을 내리는 냉철함을 갖추고 있었다.[5] 민중을 희생시키면서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고, 이로 인해 암살 미수 사건까지 발생했다.[5]

정치가로서도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여 골덴바움 왕조의 악습을 개혁하고 공정한 제도와 재판을 중시하여 제국 인민의 지지를 얻었다.[6] 농민 금고 신설, 언론 자유 보장 (불경죄 제외) 등 개혁을 추진했고, 개명파 귀족과 실력파 기술 관료를 등용했다.[6] 이러한 정책으로 민중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었으며, 양 웬리는 그를 이상적인 전제 군주로 평가했다.[6]

후대 역사가들은 라인하르트가 없었다면 은하 제국이 분열되고 혼란에 빠졌을 것이라고 평가한다.

결점은 내면 성찰이 부족하고 학구적인 사고가 부족하다는 점이다.[7] 천재였기 때문에 범인의 심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적을 만들기도 했다. 민주 정치의 결점을 지적하면서도, 민중이 루돌프나 요브 트리니히트에게 권력을 준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고, 민주주의를 지지하지 않았다.

용모는 금발과 창빙색 눈동자를 가진 미청년으로 묘사되지만, 본인은 외모를 자랑하지 않았다. 어린애 같은 면이 있어 키르히아이스의 키가 더 커지자 질투하기도 했다. 싫어하는 음식은 상추다.

"싸움을 즐긴다"는 평가처럼 호전적이고 격정적인 성격으로, 누이에 대한 중상모략에 격분하기도 했다.[12] 어린 시절부터 적을 만드는 경향이 있었고, 미터마이어는 라인하르트가 죽으면 발할라에서 먼저 죽은 제독들을 모아 정복에 나설 것이라고 상상하기도 했다.

타인의 밑에 있는 것을 싫어하여 학교에서 싸움에 자주 휘말렸고, 오만한 성격 때문에 미움을 받기도 했다. 입대 후에도 "달리는 트러블"로 불리며 평판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하급생들에게는 칭송받았고, 아랫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카리스마를 발휘했다.

골덴바움 왕조의 불공정함을 증오했지만, 예절과 관습은 존중했다. 즉위 후에는 말투가 부드러워지고 정중한 말을 사용했으며, 부하들에게도 예절을 지켰다. 독재 체제 확립 후에도 제국 재상으로서 직무에 정려했다.

안전한 곳에서 지휘하는 것을 혐오하여 항상 최전선에 섰다.[13] 황제 즉위 후에도 스스로를 최전선에 세웠고, 로이엔탈의 반란에서도 직접 싸우고 싶어 했다. 그러나 부하의 무훈을 가로채지 않도록 의식했다.

인재 수집에 뛰어나 귀천, 나이, 소속을 불문하고 유능한 인재를 등용했다.[14] 립슈타트 전역에서 적대했던 파렌하이트와 슈트라이트, 바미리온 성역 회전 후의 을 초빙하려 한 것이 그 예이다.

자신의 재능을 과신하거나 행동 원리에 반하는 자에게는 용서가 없었다.[14] 무능하면서 가문을 이유로 대우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문벌 귀족에게는 특히 가혹했다.

베스터란트의 학살 묵인, 키르히아이스의 죽음, 안네로제의 멀어짐은 트라우마가 되어 그의 생애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암살 미수 사건 때, 남자의 비난에 동요하여 풀어주려 하기도 했다.

가난한 귀족 가정 출신으로 검소함을 좋아하고, 황실의 식전이나 귀족들의 환대를 싫어했다. 즉위 후에도 군복만을 애용하고, 많은 수행을 싫어했다. "무취미하고 일 중독 기질"이라는 평가를 받으며,[15] 안네로제는 "1광년 이하의 일에는 관심이 없다"라고 평가했다.

여성 관계에 어둡고 경험이 부족하며, 성적 욕구가 희박했다.[16][17] 이는 누이 안네로제가 후궁에 들어간 소년기의 상실 체험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힐데에게 청혼할 때는 당황하며 장미 꽃다발을 준비했고, 아들 알렉 대공의 이름을 생각할 때는 종이를 흩뜨려 놓기도 했다.

율리안 민츠에게 "유머 감각은 그럭저럭 없다"라고 평가받았고, 농담을 해도 주변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지 못했다. 키르히아이스는 "남을 깎아내릴 때조차 표현이 화려해서 음습한 인상이 없는 것이 미덕"이라고 평가했다.

숭배자들에게는 "금발의 유익한 사자(그리핀)", 옥좌의 혁명가", 적대자들에게는 "건방진 금발 꼬마[18][19]", "치마 속의 대장[20]" 등으로 불렸다. 양 함대를 포함한 동맹에서는 "하얀 함대의 사령관[21]", "로엔그람 백(후/공)", "황제(카이저) 라인하르트" 등으로 불렸다. 후세 역사가들에게는 "사자 황제 라인하르트" 등으로 불린다.

양 웬리와의 공통점은 검소함과 뻔뻔한 자에 대한 관대함이다. 유머 감각이 부족한 점도 공통점이다. 다른 점은 라인하르트는 근면하고 역사를 움직이기를 원했지만, 양은 게으름을 좋아하고 방관자가 되기를 원했다는 점이다.

"은하의 체스 게임" 서장의 등장인물이기도 하며, 그 인품은 구작과 변함없다.[22]

5. 비판과 논란

5. 1. 베스터란트 학살 묵인

5. 2. 권위주의적 통치

5. 3. 여성관

6. 평가

7. 기타

작품의 작가에 따르면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은 고금의 영웅들의 집합체라고 하며, 그 예로 알렉산드로스 대왕, 카를 12세, 나폴레옹 1세 등이 언급되었다. 애니메이션판 캐릭터는 프로듀서인 타하라 마사키요(마사토시)가 자신의 에서 오쿠다 마츠리의 말에 의하면 영화 배우 다이앤 레인을 남자로 한것 같다고 회상했다.[23]

라인하르트는 전함 브륀힐트를 본편 전편에 걸쳐 승함했으며, 외전 1권에서 대장으로 진급했을 때 황제로부터 하사받았다. 레그니차 상공 조우전 이후 항상 브륀힐트에 승함했으며, 라인하르트는 이 순백의 아름다운 함선을 매우 마음에 들어 했다. 외전 1권 초반, 제3차 티아마트 회전에서는 전함 탄호이저에 탑승했다. 이시구로 감독판 OVA에서는 외전 '천억의 별, 천억의 빛' (반플리트 성역 회전, 제6차 이제르론 요새 공방전)에서도 좌승했다. 외전 '황금의 날개'에서는 구축함 엘름란트 II (츠바이)를 타고 제5차 이제르론 요새 공방전에 참가하여 동맹군의 순항함을 격침했다. 외전 「반란자」에서는 이젤론 요새 주류 함대 제237 구축대 소속의 구식 구축함 하멜른 II(츠바이)에 탑승했지만 기관 불량으로 적중에 고립되기도 했다. 외전 「탈환자」에서는 이젤론 요새 주류 함대 소속의 순항함 헤슐리히 엔첸에 탑승하여 동맹에 망명한 헬크스하이머 백작의 구속과 지향성 제플 입자 발생 장치 탈환을 위해 동맹령 내로 단함 잠입 작전을 감행했다.

애니메이션에서는 호리카와 료 (OVA 전반 / 극장판 애니메이션 2 작품), 나라하시 미키 (OVA 「제85화 천도령」에서의 소년 시절), 미도리카와 히카루 (극장판 「황금의 날개」), 미야노 마모루 (TV 애니메이션 「Die Neue These」), 카와카미 치히로 (TV 애니메이션 「Die Neue These」 소년기)가 라인하르트 역을 맡았다. 낭독・오디오북에서는 호리카와 료가, 연극에서는 마츠자카 토리, 니콜라스 에드워즈, 마미야 쇼타로, 나가타 세이이치로가 라인하르트 역을 연기했다. 은하영웅전설@TAKARAZUKA에서는 오우키 카나메(2012년 본 공연), 아야카 마리(2012년 본 공연・소년 시절), 아야하네 리쿠(2012년 신인 공연) 가 라인하르트 역을 맡았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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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서적 本伝5巻あとがき
[23] 웹사이트 【4Kリマスター版公開記念】「銀河英雄伝説」OVA版の声優キャスティング、クラシック音楽使用の秘話 https://anime.eiga.c[...] 2024-08-02
[24]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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